ESG 스타트업에 몰려드는 국내외 투자 펀드 “미래 기업, 착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앞으로 무엇이 유망한지, 무엇이 대세가 될 것인지 아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돈(투자)이 흘러가는 곳, 그곳이 곧 미래다. IT(디지털) 스타트업으로 맹렬히 흘러 들어가던 돈 줄기들조차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리세션의 경고 앞에 멈춰 서고 있지만, 예외인 곳이 있다. 바로 ESG 스타트업이다. 팬데믹과 기후변화를 겪은 세계는 ESG에 대한 규제를 더 강화하고, 소비자들의 관심도 거세지는 중이다. 고전 경제학 교과서의 맨 앞 장에 나오는 기업의 존재 목적 ‘이윤 창출’이라는 명제는 이제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물론 이윤을 창출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 기업의 운명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고 공동체를 위하는 책임이 ‘도리’나 ‘윤리’가 아닌 법과 제도로써 설계되어 지는 중이다. 실제 우리보다 친환경 규제가 강력한 미주와 유럽 기업들은 전 세계를 뒤지며 친환경 소재, 원부자재를 찾아 헤매는 중이다. 투자회사들은 그 미래를 한발 일찍 꿰뚫어 본 것뿐이다. 착한 기업이 돈을 벌게 될 것이고, 착하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모펀드 투자사 티비인베스트먼트의 임원국 대표는 일찍이 지속 가능 종목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생명공학을 전공한 임 대표의 남다른 안목도 작용했다.
지난해 그는 여러 투자사를 설득해 200억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친환경 플라스틱 제조 기업 KBF에 투자했다. 2019년 BGF 그룹에 인수된 KBF는 옥수수 유래 성분의 생분해성 PLA를 제조 유통한다. KBF는 원료 수급과 개발, 대량 생산 능력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마스크, 물티슈, 기저귀, 일반 포장용기 등을 자체 개발했고 최근에는 열에 약한 PLA의 단점을 발포 기술로 해결한 내열 식품 용기까지 개발했다. CU편의점 등 모 회사의 유통 채널을 통해 판로도 갖추었다. 높은 미래 가치가 매겨지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국내 생분해성 메디컬 소재 시장을 연 소프엔티의 한설아 대표는 텍스타일 공학 박사 출신이다. 그는 유럽에 의료복을 수출하려다, 친환경 규제 장벽에 봉착, 아예 친환경 신소재를 개발하게 됐다. 천연 셀룰로오스 기반의 생분해성 원사를 개발한 독일 스마트화이버 사와 제휴해 항바이러스와 생분해성이 융합된 한 차원 높은 메디컬 웨어 ‘애트블로’를 런칭했다. 그 결과 올해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포스코와 제휴도 논의 중이다. 무엇보다 시장 반응이 뜨겁다. 독일 스마트화이버 CEO는 스스로 독일과 스위스의 대형 병원 및 보건 당국에 ‘애트블로’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한 대표는 “향후 유해물질을 차단한 산업용 워크웨어로 분야를 확장한다. 내년 미국, 유럽 일대 수출도 본격화한다”고 말했다. 바다에 버려지는 폐어망을 수거해 재생 나일론과 고성능 플라스틱 소재를 만드는 넷스파는 지난해 30억, 올해 15억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독일 아디다스 본사의 부사장이 직접 부산
본사를 찾은 일이 알려졌고, 국내 에코플랜트, 효성티앤씨 등 대기업들이 협업을 하자며 찾아 왔다. 폐자재를 활용해 소재를 만드는 기업들은 많지만 넷스파는 대규모 생산 능력과 기술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경남 하동에 재생 나일론의 펠릿(압축 플라스틱 알갱이)화 시설을 갖췄고, 서울 강서구 자원순환단지 내 생산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ESG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이제 시작이다. 소풍벤처스는 한국 최초의 기후 테크 펀드 '임팩트 피크닉 2호 투자조합'(가칭)을 조성하고 창업가 육성에 나섰다. 펀드 규모만 100억 원, 스타일쉐어 창업자 윤자영 대표도 출자를 결정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효성티앤씨, 케이투, 블랙야크 등 패션 기업 및 섬유 대형사들도 스타트업 육성에 적극이다. ESG 스타트업 어워드를 제정하고, ESG 소재 스타트업의 발굴과 공동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은 영세한 곳들이 많아, 대량 생산 수급이 문제로 꼽힌다. 즉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간다는 뜻인데, 다시 말하면 상용화와 양산 체제에 성공한 스타트업은 ‘돈 방석’에 앉게 된다는 얘기다.
글로벌 SPA, ESG 스타트업 직접 육성
‘환경 오염 주범’ 오명 벗기 일환 파인애플, 와인찌꺼기 소재 개발
해외에서는 패션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ESG 소재 기업을 육성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H&M, 자라 등 환경에 해악을 끼친다고 지목된 SPA 기업들이 적극적이다.
1년 사이 이들을 통해 성장한 소재 스타트업이 상당수에 이르는데, 영국 업체 아나나스 아남이 개발한 파인애플 소재 ‘피냐텍스’가 대표적이다. 파인애플 잎에서 섬유질을 모아 펠트화해 만든 천연가죽이다. ‘H&M’을 시작으로 푸마, 휴고 보스가 도입했고, ‘테슬라’가 자동차 가죽시트로 사용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비제아’는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 찌꺼기를 눌러 붙인 후 섬유질과 기름을 뽑아내 원단을 개발했다. 몃 년 전 H&M 글로벌 체인지 어워드에서 1위를 차지해 30만 유로의 개발 자금 지원을 받았다.
‘파타고니아’는 친환경 투자사 틴 쉐드를 통해 벤처투자기금 TSV를 조성했다. 남미 어촌에서 수거한 폐그물로 선글라스 등을 만드는 ‘부레오(Bureo)’ 등에 투자하고 있다.
라운지웨어 ‘판게아’의 첨단 자연주의란
先 소재 개발, 後 드롭 출시 세상 ‘힙’한 친환경 패션의 성공
소재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패션 기업으로 성공한 경우는 이미 많다. 지속 가능 이슈가 본격화된 10년 전부터 등장한 기업들로, 올버즈, 판게아, 세이브더덕, 나우, 프라이탁 등이 대표적이다. 이중 ‘판게아’와 ‘세이브더덕’은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첨단 자연주의를 표방하며 혜성처럼 나타난 라운지웨어 ‘판게아’. 이 브랜드는 먼저 소재를 개발하고 아이템을 드롭 방식으로 출시한다. 포장재도 생분해성 바이오 기반 플라스틱 대체품인 RIPA로 제작하는데, 퇴비통에서 180일이면 100% 자연 분해된다. 이 회사는 현재 패션 사업 부문과 별도로 섬유 사업, 원부자재 라이선싱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세이브더덕’은 애니멀 프리 패션의 대표주자다. 오리털 등 동물 소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크루얼티 프리와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로만 의류를 제작한다. 1914년 설립된 의류 기업 포레스트 컴퍼니의 오너 3세인 니콜라스 바르기가 2012년에 런칭했는데, 5년 연속 두 자릿수 신장을 거듭하는 중이다. 국내는 신세계인터내셔널이 독점 수입하고 있다.
박해영 기자 envy007@apparelnews.co.kr
출처: http://www.apparelnews.co.kr/news/news_view/?idx=200294
Comentarios